Travels/20220813 W.Europe

서유럽 여행 - 17. 런던의 프렌치 미쉐린 2스타 레스토랑 Le Gavroche 디너 코스

루스티 2023. 7. 6. 01:06

저녁을 먹으러 하이드 파크 옆의 작은 골목으로 향한다. 이곳엔 Le Gavroche 라는 레스토랑이 있는데, 이번 유럽 여행을 하면서 세웠던 계획 중 하나는 각 나라에서 미쉐린 가이드에서 별을 받은 레스토랑을 찾아가 보는 것이었고 그중 첫 번째 방문지로 오게 된 곳이 이 Le Gavroche이다. 1967년에 개업한 이 레스토랑은 영국에서 처음으로 미쉐린의 별을 받은 레스토랑으로 영국에서 2개의 스타를 획득한 최초의 레스토랑, 그리고 3개의 스타를 획득한 최초의 레스토랑이라는 타이틀도 가지고 있다. 미쉐린 3-스타는 1982년부터 1993년까지 유지했는데, 창업자의 아들인 Michel Roux Jr가 물려받으면서 3성 레스토랑에서 2성으로 바뀐 뒤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영국에서 처음으로 미쉐린 3-스타를 받은 레스토랑이다 보니 이 레스토랑을 거쳐간 셰프 중에 유명한 사람이 많은데,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셰프 중 한 명인 고든 램지와 마르코 피에르 화이트 등이 있다. 사실 이번 여행에서 이 둘의 시그니쳐 레스토랑 또한 방문해보고 싶었으나 예약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결국 갈 수 없었어서 아쉽기는 하였지만 고든 램지의 Heddon Street Kitchen에서 그의 시그니쳐 메뉴인 비프 웰링턴을 먹었으니 그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레스토랑의 입구는 레스토랑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기가 어렵게 되어 있었는데, 아는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비밀스러운 음식점이라는 느낌을 주는 현관에 크지 않은 글씨로 Le Gavroche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물을 열고 들어가면 정중한 웨이터의 안내를 받아 지하로 내려가는데, 의외로 꽤 커다란 홀이 지하에 있었다. 원형 테이블들이 놓여 있고, 사이드 자리는 소파로 되어 있었는데 우리는 사이드의 소파에 나란히 앉아서 디너 코스를 즐길 수 있었다. 초록색으로 칠해진 홀의 벽에는 창업자 중 한 명이자 현 오너쉐프의 아버지인 Albert Roux 의 초상이 걸려 있기도 하다. 우리는 5시 반 예약으로 거의 첫 번째 타임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없는 틈을 타서 조금 여유롭게 홀 사진을 찍어볼 수 있었다.

우리는 Menu Exceptionnel이라고 하는 7 코스의 테이스팅 메뉴에 100파운드의 와인 페어링을 추가해 인당 280파운드의 식사가 되었다. 다만 코스 메뉴만 있는 것은 아니고, 알라카르테도 주문할 수 있다. 또한 베지테리언 코스 메뉴도 존재한다.

유럽에서 미식 여행을 다니면서 느낀 부분이지만 대부분의 미쉐린 레스토랑에서 베지테리언 메뉴와 베지테리언 코스를 찾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확실히 베지테리언에 대한 케어가 잘 되어있다고 느꼈다.

먼저 준비되는 것은 어뮤즈 부쉬와 빵인데, 어뮤즈 부쉬에는 크림 크로켓, 파이, 롤이 있었는데 크림 크로켓이 가장 맛있었다. 어뮤즈 부쉬를 맛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단순한 요리라기보다는 아트에 가까운 것이구나 하는 것을 느꼈던 것 같다. 빵도 따뜻한 빵이 나와서 맛있었고, 함께 나온 버터도 굉장히 고소하고 부드러워서 맛있었다.

처음부터 나를 감동시킨 디쉬. 수플레 스위스라는 이름의 치즈 수플레. 기포가 많은 계란 수플레같은 질감에 크리미함과 치즈의 맛과 향이 더해진 놀라운 디쉬였다. 이 요리는 이것이 미식의 세계이구나 하는 것을 알게 해 주었던 것 같다. 나중에 찾아본 바로는 이 수플레 스위스는 미쉐린 가이드의 짧은 소개에 등장할 정도로 레스토랑의 시그니쳐 메뉴라고 할 수 있는 메뉴였다.

같이 페어링된 와인은 이탈리아 시실리에서 온 Marsala Superiore - Cantine Pellegrino 였는데, 알코올 향이 좀 있는, 드라이한 편이지만 프루티하고 달달한 향이 느껴지는 와인이어서 잘 어울렸던 것 같다.

두 번째 코스는 화이트 크랩에 브라운 크랩 마요네즈를 섞어서 구운 토마토를 곁들인 요리였다. 게살에 게살마요라니 역시 남이 까준 게를 먹는게 가장 맛있다. 서로 다른 두 가지 종류의 게가 만들어내는 향과 맛의 향연을 즐길 수 있었다. 플레이팅 또한 아름다운데, 일식처럼 절제의 미가 깔려있는 것이 느껴졌다.

페어링된 와인은 잉글랜드 켄트의 Chapel Down에서 온 Kit's COTY 2020년 빈티지로 아로마틱한 향이 좋았다. 이 와인은 품종이 Bacchus라는 포도를 이용해 담근 술인데, 이는 로마 신화의 술의 신의 이름이고, 박카스는 이 신에서 온 이름이기에 재미있었다.

세 번째 코스는 연어와 이쿠라. Salmone Caviar라는 이름을 보고 뭘까 궁금해했지만 연어알 즉 이쿠라였다. 왼쪽 위의 것은 콜라비라는 순무로 만든 피클이다. 미소 소스와 어우러져서 일식의 느낌이 나는 접시였다. 연어는 굉장히 부드러웠고 이정도의 굽기는 일본에서도 쉽게 접하지 못할법한 굽기라서 좋았다.

재미있게도 일본 야마가타에서 생산되는 데와자쿠라 긴조주라는 사케를 페어링해주었는데, 이 부분에서 이것은 일본 접시이구나 하는 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중에 보니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와인상이자 왕실 납품업체인 BB&R 사가 처음 취급하는 일본술이라는 타이틀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네 번째 코스로는 라비올리인데, Broad bean과 마데이라 와인으로 만든 소스를 곁들인 신선한 야생 버섯으로 채운 파스타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강한 버섯의 풍미가 정말 좋았던 라비올리.

페어링된 와인은 Chateau Cabezac의 Grande Cuvee Belveze 2011년 빈티지로, 달팽이 그림으로 유명한 샤또 카브작의 플래그쉽 라인에 자리한 와인이라고 한다. 부드럽고 깔끔해서 파스타와도 잘 어울렸던 것 같은데, 이쯤에서부터 기억이 조금 희미해지고 있다.

메인 디쉬로는 송아지 스테이크. Veal loin이라고 하는 부위는 송아지가 더 자라면 포터하우스나 티본이 되는 부위라고 한다. 송아지 등심 스테이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상당히 부드럽고 맛있긴 했지만 스테이크라는 틀 안에서 아주 감명깊은 요리는 아니었다.

함께 페어링된 와인은 Barbera d'Asti "La Villa" 2017년 빈티지로 살짝 바디감이 있고 드라이한 편이다. 고기와 잘 어울리는 와인이었지만, 와인 초보자인 나에게는 살짝 어려운 와인이었던 것 같다.

치즈 카트가 왔는데, 무료인 점이 좋았다. 유럽에서 갔던 다른 미쉐린 레스토랑들은 치즈 카트에 추가금을 받는데 여기는 음식값에 포함되어 있었다. 유럽의 편이 조금 더 합리적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기분 상으로는 미리 포함되어 있는 편이 더 나은 것 같다.

배가 부르지만 다섯가지 정도 이것저것 골라서 먹어보았다.

치즈 카트에도 와인 페어링을 해 주는데, 보르도의 Château Le Gabachot 2007년 빈티지로 Chateau La Croix(샤또 라 크로와) 양조장의 세컨 레이블 와인이다. 꽤 무겁고 탄닌향도 센 와인이었지만 치즈들 또한 향과 맛의 개성이 강한 치즈들이라서 바디감있는 와인이 잘 어울렸다. 남아있던 다른 와인과도 같이 즐겼는데, 송아지와 페어링되었던 바디감있는 바르베라 다스티와도 잘 어울리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제서야 받은 디저트, 딸기 타르트와 딸기 소르베. 둘다 달콤하고 맛있었는데, 페어링된 와인이었던 Jean-Claude & Didier Aubert의 Vouvray Moelleux 2017년이 크리미하고 부드럽고 달아서 디저트들과 잘 어울렸다.

다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더 주는것이 미덕인지, 커피와 함께 프티 푸르가 제공되었다. 이미 배가 너무 부르지만, 나온 음식을 지나치는 것은 예의가 아니기에 끝까지 잘 먹고 마시고 돌아왔다.

술을 잔뜩 마셔서 정신줄을 살짝 놓은 상태로 어찌어찌 우버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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